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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활동과 이야기/경기도교육청 드림프랜즈 1기

[드림프랜즈 1기] #6 "나의 미래는?" 흡연 vs 비흡연 20년 후의 나의 모습 상상하기

by société 2017. 2. 12.

     경기도교육청 드림프랜즈  : 경기도교육청 청소년 흡연예방 및 금연 서포터즈 




#6 "나의 미래는?" 흡연 vs 비흡연 20년 후의 나의 모습 상상하기


여섯 번째 글의 주제는 '흡연 20년 후' vs '비흡연 20년 후'의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5번째 글의 "청소년 흡연의 위험성/문제점 조성'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지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이번 글은 소설처럼 만들어 보았습니다!


#1 '흡연 20년 후'

중학교 2학년......
학교에서 또래 아이들과 함께 호기심으로 흡연을 하다보니, 니코틴에 삶을 의존하게 되고 결국 성인이 된 36세까지 흡연을 이어오게 되었다. 4년 전엔 프로포즈를 해 결혼에 골인하고, 3년 전엔 딸도 태어났다.
그렇게 바래오던 아빠, 남편이었건만, 집에만 들어오면 아내에게 담배 좀 그만 피라는 잔소리만 듣게 됬다. 딸도 엄마를 따라하는지 "아빠, 냄새 나", "담배 좀 그만피워!"라는 이야기를 하고, 나를 피하려고만 한다.

담배를 끊으려 해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피워서인지 끊기가 쉽지 않고 그런 삶이 계속 이어질 수록 아내와 아이의 충고는 잔소리로, 담배를 끊으려는 시도는 결국 스트레스로 이어져 아내와의 부부싸움이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진다. 내 아이를 위해 담배를 끊어야 되는 것을 알지만, 그게 맘처럼 쉽게 이뤄지지 않아서 힘들다.
아이도 계속 나를 피하고, 아내에게만 붙어서 애교를 떠니 짜증만 더 쌓여간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삶을 연장하고 있던 도중 딸이 어린이집에서 가족그림을 그려왔다.
그 그림을 보고, 나는 눈물 밖에 흘릴 수 없었다. 그 그림에서의 나는 담배에 찌든 골초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내와 본인에게서는 멀어졌으면 하는 딸의 마음이 그림에 담겨 결국 눈물을 흘리는 단계까지 왔다.

매일매일이 고통스러운 삶의 연장이다. 아이와 아내도 더 이상 나에게서 멀어져가고 싶다는 마음 밖에 없고, 나에게는 그런 금연 스트레스가 계속 이어져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5년 후
딸은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됬고, 우리도 결혼 9주기를 앞뒀다.
나는 아직도 담배를 끊기 힘들고, 몸과 마음은 점점 더 피폐해져만 갔다.
그렇게 딸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고, 딸에게 "아빠"란 멀고 먼 존재로 무서운 존재에 불과했다.
나는 딸의 애교도, 딸의 사랑도 받지 못한채 그렇게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고, 정형화되고 있었다.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한다. 특히, 올해는 숨이 많이 차고, 어렸을 때 있던 천식까지 겹쳐 몸에 이상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 건강검진을 받고, 돌아온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스트레스로 인해 니코틴 의존이 더 심해졌고, 폐기능 저하가 심각하게 나타나 숨참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그리고, 호흡기 질환인 비염이 생겼다고 한다.
의사는 점점 합병증이 심해지고, 앞으로도 더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금연과 금주를 동시에 실행할 것을 숙제로 내었으나, 나는 이 결과와 의사의 숙제가 한 없이 높은 하늘에 불과했다.


금연 1일차, 아직까지는 살만하다.
금연 껌과 금연패치를 붙이면서 겨우겨우 참아가고 있다.

금연 2일차, 조금씩 미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본부장과 부장한테 스트레스란 스트레스는 다받고, 담배를 피우고 싶지만 미친듯이 가족과 나를 위한 길이라며, 참고있다.

금연 3일차, 담배 갑이 눈 앞에 아른 거린다.
담배 한개비만 하며, 눈 앞에 아른 거리는 게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미치도록 피우고 싶다.

금연 4일차, 결국 회사에 휴직계를 냈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일주일 동안 아침운동과 잠으로 금연을 하기로 결심했다.

금연 5일차.... 후회 밖에 남지 않았다.
담배에 이끌려 살아온 나의 삶이 참 처량했구나......
아내와 딸에게 미움을 받아온 나의 삶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다시 되돌아갈 수 있을까하는 나의 생각은 흡연과 금연을 오갔고, 나는 후회 밖에 남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아내에게도 딸에게 미안한 이 삶을
어떻게 바꿔 나가면 좋을 지 이젠 모르겠다.




#2 '비흡연 20년 후'
중학교 땐 전교회장을 하면서 아이들과 친분을 쌓고, 고등학교 때는 청소년을 위한 자치와 금연활동에 신경을 쏟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중학교 때부터는 도교육청에서 해온 "흡연예방실천학교"와 '드림프랜즈'에 관심을 갖고 아이들에게 건강을 전파해왔다.

성인이 된 후에도 아버지를 닮아, 술과 담배에는 거리를 두고 음주는 어쩔 수 없을 때만 종종 하는 경우였다.
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았고, 그렇게 36세까지 삶을 살아왔다.

4년 전엔 프로포즈를 해 결혼에 골인하고, 3년 전엔 딸도 태어났다.
엄청 바래왔던 아빠와 남편 노릇을 지금은 행복하게 하고 있다.
딸과는 행복하게 소풍과 공연도 보고, 아내와는 결혼기념일도 같이 지내며 더욱 돈독히 지내고 있는 가족으로 지내고 있다.

딸과 아내 그리고, 부모님까지 모두 모시고 유럽과 일본, 미국까지 해외여행을 다녔고,
어머님께서 그렇게 원하시던 '배낭여행'까지 보내드리며, 효자로서의 노릇을 하고 다녔다.

나는 기자로 삶을 시작해 역사/국어 교사, 외교관, 국회의원을 거쳐, 지금은 가족과 배낭여행가로 지내고 있다.
여러 경력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왔고, 그 많은 경력과 경험을 정리하기 위해 가족과 배낭여행을 떠나 수필과 여행기를 쓸 계획을 지니고 있다. 수많은 수첩과 수많은 메모에 항상 둘러싸이지만, 가족이 있기에 더 버틸 수 있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올 수는 없는 것이지만, 내가 삶을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것은 역시 흡연을 하지 않고 아내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쉽게도 내가 중학교 때부터 알아오던 친구는 입에 담배를 계속 대면서 결국 1년 전 폐암으로 세상을 떴다. 그 친구의 부모님의 얼굴을 지금도 생생히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상심하신 얼굴을......

우리 부모님이 그런 얼굴을....
내 아내와 아이가 그런 얼굴을.... 하지 않아서 다행일 뿐이다.

나는 이렇게 행복한 삶을 살아오고 있다.
당신은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아오고 있나요?



여러분, 담배는 행복한 삶의 기준입니다.
물론 담배를 피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담배를 입에 대고 지속적으로 피워 여러 질병에 걸리지 않는 것으로도 행복한 가족 생활과 건강한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가요?
묻고 싶습니다. 가장 행복해야 할 가족과 부모님과 담배로 인해 스트레스와 트러블을 일으키고 있지는 않나요?